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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2018.04-2022.2 | ✈️ 항공업계를 떠나며(1) -이스타항공에서 에어프레미아로.

by Lizzie Oh 2022. 2. 15.

나는 여행을 좋아하고 비행기를 자주 타고 싶다는 순진한 이유로 졸업 후 3개 항공사에 지원을 했다. 운이 좋게도 이스타항공에 합격을 했고, 졸업식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나는 항공 운임 가격을 조절하며 판매 수익을 극대화시키는 직무(RM; Revenue Manager)에 지원을 했는데, 입사를 하고보니 소속이 '영업 마케팅팀'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나의 '사회조사분석사' 자격증에 주목하신 당시 영업 본부장님께서 '쟤는 마케팅 조사를 시켜라'라는 내부 명령을 내리셨다고 했다.

 

입사 교육때도 소속이 동남아팀(RM)이었는데 입사해보니 영업마케팅팀 ^^;

 

이스타항공의 영업마케팅팀은 시스템 파트와 마케팅 파트로 나뉘어있었다. 나는 최초에 마케팅 파트에 배정받았는데, 급작스럽게 시스템 파트로 소속이 변경되었다. 시스템 파트의 한 과장님이 퇴사를 하시게 되어 팀 내 인력이 부족해졌기 때문이었다. 팀장님께서는 시스템 파트에서 하는 일을 설명해주셨다. PSS(항공예약시스템) 관리, GDS(여행사에서 사용하는 항공권 예약 발권 시스템) 판매를 위해 해야 할 OAG/INNOVATA에 SSIM 파일 전송, ATPCO를 통한 운임 파일...(🤦🏻‍♀️) 생전 처음 듣는 용어들이 난무했고 앞 날이 깜깜했다. (후에 시스템파트는 영업시스템지원팀으로 분리됐다)

 

2년차가 되자 무시무시해 보이던 업무들이 더 이상 무섭지 않았다. 심지어 업무에 피로를 느끼기 시작했다. 항공사는 거의 해외 시스템을 사용하기 때문에 해외 업체와의 커뮤니케이션이 잦았는데 우리 팀에는 영어에 익숙한 분이 거의 없으셨고, 막내이면서 영어에 익숙했던 나는 점점 업무보다는 통역을 하는 사람이 되고있었다. 물론 통역을 하기 위해 배울 수 있었던 업무도 많았지만, 내가 담당하고 책임질 수 있는 업무는 점점 사라져갔다.

 

반복되는 통역 업무에 현타를 진하게 느낄 때쯤, 스타트업 항공사인 에어프레미아에서 입사 제안을 받았다. 영업 시스템을 꾸려갈 사람이 필요한데 함께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이었다. 스타트업은, 특히 항공사 스타트업은 너무 위험하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진입 장벽이 아주 높은 항공 산업에서 처음부터 시스템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에 참여해 보는 것은 좀처럼 오지 않을 기회였다. 게다가 에어프레미아는 꽤 오랫동안 눈여겨 보고 있던 회사였다. 4개월만 더 채우면 '청년내일채움공제' 24개월 만기를 채워 1,600만원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게 내가 주저한 유일한 이유였다.

 

나이 스물 일곱에 1,600만원 때문에 배움의 기회를 걷어찬다는 건 어리석게 느껴졌다. 결국 이스타항공에서의 1년 7개월 간의 경력을 마무리짓고, 에어프레미아에서 새 여정을 시작하게 됐다. 이스타항공을 퇴사 할 때 많은 동료들이 나의 앞날을 걱정했는데, 몇 달 후 코로나 바이러스로 이스타항공이 파산하게 된 것을 생각하면 인생은 정말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것 같다.

 

이스타항공에서의 마지막 날. 책상 정리 후 찍은 내 자리 사진

 

새 회사에서의 시작은 아름답고 신선했다. 신기한 협업 툴(Jira, Confluence, 잔디 등)을 사용해서 소통하는 것, 간단한 구글 form으로 (결재권자의 승인없이) 연차를 사용할 수 잇는 것, 나보다 30세나 많으신 부장님을 매니저님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 분이 나를 동등하게 매니저님이라 부르시는 것도 신선했다. 기업 문화 뿐 아니라, 고작 2-3년차인 내가 회사의 서비스 방향을 함께 잡아 나갈 수 있고, 영업/마케팅 전략의 초석을 다져나갈 수 있다는 건 정말이지 놀라웠다.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항공 서비스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자부심과 기대감이 가득했다.

 

내 마음을 두근거리게 했던 에어프레미아 소개서의 한 페이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고 있다는 사실에 벅찼다.

 

하지만 장기화되는 코로나로 인해 항공업에 대한 투자심리는 얼어붙었고, 회사의 자본금은 바닥이 났다. 다섯 달 동안 월급을 못 받은 적도 있었다. 언제 나올 지 모르는 월급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던 건 함께 일하던 동료들의 줄 퇴사였다. 월급이 끊기면서 약 20명에 달하는 IT실이 통째로 회사를 떠났고, 긴밀히 일하던 부서에서도 핵심 인력들이 퇴사를 했다. 이후 신규 투자는 들어왔지만, 한 번 가라앉은 사내 분위기는 다시 회복되지 않았다. 여전히 회사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안고 있었고 업무는 쏟아졌지만 사람은 부족했다. 이미 1인 3역 쯤을 해내고 있던 직원들은 이제 일당백을 해내야 했다.

 

혼란 속에 조직이 개편되었다. 나는 영업본부에서 IT운영팀으로 소속이 변경되었고, PSS(항공예약시스템)을 정으로 담당하시던 내 사수는 서버와 인프라까지 담당하게 되면서, 내가 PSS 메인 Admin 역할을 담당하게 됐다. 당시 IT운영팀은 나를 포함 총 3명이었다. 팀장님, 내 사수,  그리고 나. 항공사에 필요한 시스템 규모를 생각하면 세 명은 역부족이었지만, 월급이 몇달째 밀리고 있는 회사에 새로 입사하려는 사람은 없었다. 

 

영업본부에서 IT운영팀으로 소속이 변경된 즈음부터는 너무 많은 새로운 이야기가 있기에, 다음 글에서 마저 이야기 하도록 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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